가벼운 고백
🔖 과학을 혐오하는 최적의 방법은 과학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. 가장 비과학적인 걸 늘어놓고 그걸 과학이라 하는 것이다. 삶을 혐오하는 최적의 방법은 삶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, 생존을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.
🔖 미얀마에 다녀왔다. 그곳 사람들(중 일부)은 이번 생이 망했으면 다음 생을 기다려보고, 이번 생의 문제는 지난 생의 업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.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품위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.
🔖 비판적인 것과 시니컬한 것은 다르다. 얼마든지 삶을 비판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. 노예가 족쇄를 사랑하듯 삶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.
🔖 오늘날 뛰어난 예술은 술 퍼먹고 기행을 일삼는 이들에게서 나오기보다는, 명징한 정신을 유지하고 지적 정확함을 추구하는 자기 단련의 족속들에게서 나온다. 예술도 그러할진대, 학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.
🔖 야수가 이미 공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, 홈으로 뛰어야만 하는 주자는 얼마나 비극적인가?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. 그는 자신의 아웃을 향해 달려야 한다. 야구 경기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.
🔖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,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으로 한꺼번에 번식공동체, 대화공동체, 육아공동체, 일상공동체, 농담공동체, 생존공동체 그리고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고자 한다. 그 많은 것이 한 방에 다 성공할 리 있겠는가.
🔖 "에콰도르의 수산시장에는 줄을 서서 생선을 구매하는 바다사자가 있어. 그곳에서는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생선 가게 아저씨들 역시 무심하게 바다사자 차례가 되면 생선을 잘라준대”라고 옛 친구가 그랬지. "이곳에서는 최대한 '살고 있는 척하다가' 나중에 중남미의 해변에서 '살자'”라며.
🔖 동물 다큐멘터리에서, 혹자는 도덕의 무가치함을 보고, 혹자는 생명의 무가치함을 본다.
🔖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"내가 가진 것은 세계다. 커리어가 아니다"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. 그렇다. 그래서 학문과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다. 자신의 삶을 커리어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서. 자신이 가꾸어온 세계와 더불어 살고 더불어 죽기 위해서.